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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인문 쾌락의 정원
  • 저자 이어, 김의정
  • ISBN 9788967355135
  • 페이지 792
  • 정가 38,000원
  • 판매가 34,200원 (10%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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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동양의 에피쿠로스 이어의 『한정우기』 국내 초역 동양 문화의 총수가 담긴 지식백과사전이자 양생기 “삶을 건강하게 즐기는 법”에 대한 지식 총 망라 청나라 초기에 쓰인 지식백과사전이자 양생서,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온갖 지혜와 철학, 실용적 지식을 담은 『한정우기閑情偶寄』가 국내 초역되었다.

이 시기와 분야 연구를 꾸준히 해온 김의정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한국어판 제목을 ‘쾌락의 정원’이라 붙이고, 부제에 ‘동양의 에피쿠로스’라는 구절을 넣은 것은 이 책이 독자에게 안겨줄 충격을 반영한 것이다.

한 사람이 삶을 가꾸고 즐기는 데 있어서 이 정도의 열정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이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이어李漁’라는 인물에 대하여 명말 청초 시기에 활동한 이어李漁는 원래 이름이 선려仙侶이고 나중에 어漁로 개명했다.

자字는 적범謫凡이고 호號는 천도天徒 또는 입옹笠翁이라 한다.

절강성 금화부金華府 난계현蘭溪縣 하리촌夏李村 사람으로 명말 청초의 저명한 희곡 이론가이며 희곡작품과 백화소설을 다수 창작했다.

다재다능했던 그는 오늘날의 직업군으로 보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분야에 몸담았는데, 극작가이자 연출가 겸 극단 경영자였고, 책의 기획과 편집에서 출판과 판매를 총괄하는 전문 출판인이었다.

또한 소설과 희곡을 쓴 작가이자 비평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 『한정우기閑情偶寄』의 면면에 드러나듯이 건축·가구제작·의복·장신구·화훼·음식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전 영역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했던 예술가였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어의 출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이어의 모친이 열 달이 넘었는데도 해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백발노인은 큰 인물이 태어날 예정이나 이곳의 지세가 출산을 막고 있다고 하여, 마을에서 가장 큰 사당으로 옮겼더니 순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힘들게 얻은 아이였고 비범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어 ‘신선의 벗(선려仙侶)’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속세에 유배 오다(적범謫凡)’라는 자를 가졌으며, ‘하늘의 무리天徒’라는 호를 받았다.

그리고 과연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을 보여 가족 뿐 아니라 온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이어는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공부하던 중, 19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생계가 곤란해지자 가족과 함께 난계로 돌아와 결혼했다.

꿋꿋이 학업을 계속하여 숭정崇禎 8년(1635), 금화金華의 동자시童子試에 합격하고 생원이 되었다.

그러나 29세가 되던 숭정 12년(1639) 항주杭州에서의 향시에서는 합격하지 못하고 금화에서 2년간 막부의 막료생활을 했다.

숭정 15년(1642) 명 왕조의 마지막 향시가 있던 해, 항주로 응시하러 가던 중에 정국의 위험을 느끼고 난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과연 청나라의 침입으로 명 왕조는 사라졌다.

국가 멸망과 함께 오랫동안 꿈꾸었던 과거시험을 통한 성공의 꿈도 사라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관리가 되려는 길을 포기하고, 고향 하리촌 이산伊山에 별장을 마련했다.

별장의 이름은 이원伊園으로, 자신의 원림 철학에 따라 직접 설계했다.

또한 이 시기에 고향마을에 주민을 위한 정자를 짓고 하천의 준설공사도 벌였다.

1651년, 이어는 분쟁에 휘말려 가산을 정리하고 항주로 이사했다.

이때부터가 이어의 인생 제2기인데, 그는 전과 다른 삶의 길을 결심했으며 글을 팔아 생활을 시작했다.

『풍쟁오風箏誤』 『의중연意中緣』 등의 희곡과 『무성희無聲戱』 『십이루十二樓』 등의 백화소설집이 이 시기의 대표적 성과다.

항주에 거주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이어는 인기 작가가 되었다.

당시 항주杭州, 소주蘇州, 남경南京 등지에서는 불법복제가 심해졌는데, 이어 본인도 모르는 작품이 ‘호상입옹湖上笠翁’이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1662년 항주를 떠나 남경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때부터 문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항주 시기의 이어가 전업 작가에 가까웠다면, 남경 시기의 이어는 극단주와 출판인을 겸한 다각적 문화 사업가였다.

몇 년 후 그는 이곳에 자신이 설계한 개자원芥子園을 지었다.

문인들의 서신 모음집과 관리들의 판결 모음집을 출판했고, 유명한 그림 교본 『개자원화보芥子園?譜』도 이곳에서 나왔다.

당시 이어의 집안에는 노복까지 합치면 수십 명에 달하는 식솔이 있었다.

이들을 부양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으므로, 그는 늘 외출하여 관리들과 사귀며 그들의 사례를 받았다.

글을 파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후원금을 받았으며 팔리지 않는 글은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불륜과 엽기로 가득한 그의 소설과 희극은 정통 문인들의 눈에는 천박하고 조잡한 것일 뿐이어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1666년부터 이어는 섬서陝西, 감숙甘肅, 북경北京 등지를 돌아다니며 후원자를 알아보았다.

이 와중에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교희喬姬와 왕희王姬를 발굴하여 가반家班(가정 내 연극단)을 꾸려 전국 각지를 돌면서 공연 활동을 했다.

아마도 이 시기가 힘들었지만 이어의 후반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득의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일생의 경험을 총괄한 야심작 『한정우기』도 이때 나왔다.

(1671, 강희 10년) 그러나 몇 년 후 교희와 왕희가 병사하고 심리적 타격을 입었으며, 사업도 잘 되지 않아 만년의 이어는 상당히 곤궁하게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년의 이어는 고향 난계로 돌아왔다가 1677년, 늦게 얻은 아들의 과거시험 응시를 위해 67세의 나이에 다시 항주로 이사했다.

이 시기 거주지는 산기슭에 있어 이곳에 작은 원림을 짓고 이름을 층원層園이라 했다.

힘든 이사 끝에 가난과 질병이 겹쳐 고통스런 시기를 보냈으나, 대련對聯에서 “호수와 난이 나를 부르니 온 집안이 그림 속으로 이사왔다”라고 쓰며 기뻐했다.

그리고 1680년(강희 19) 일생을 여러 직업을 가지고 여러 지역을 떠돌며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이어는 항주에서 눈을 감았다.

이어는 수시로 후원자 물색 여행을 떠났던 만큼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일화를 기록했으며, 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별도의 출판물로 묶어내기도 했다.

이어가 만난 인물은 전겸익錢謙益과 오위업吳偉業 등 저명한 문인에서 공예품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수가 8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전국의 17개 성省, 200개 현縣을 방문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은 늘 그를 깨어 있게 했고 작품의 풍부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한정우기閑情偶寄』에 대하여 16~17세기 강남의 지식인들은 풍부한 물질문화를 문인의 관점에서 담론화했다.

고렴高濂의 『준생팔전遵生八?』, 진계유陳繼儒의 『암서유사巖棲幽事』, 도륭屠隆의 『고반여사考盤餘事』, 문진형文震亨의 『장물지長物志』가 대표적 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한정우기』는 이러한 책들과 노선을 달리하는데,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던 비주류 문인답게 대중화의 길로 나아갔다.

한마디로 『한정우기』는 전통적 문인의 삶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문화시장에 뛰어들었던 그의 고민과 열정이 담겨 있는 일종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주로 희곡 창작과 무대 연출을 위한 전문서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의식주衣食住 전반을 다룬 실용서적에 가깝다.

사곡부詞曲部·연습부演習部·성용부聲容部·거실부居室部·기완부器玩部·음찬부?饌部·종식부種植部·이양부?養部의 8부로 구성되어 있는 가운데, 사곡부와 연습부는 희곡 연출로 특화된 부분이고, 국내에 따로 번역 소개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일상생활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나머지 여섯 부문에 대하여 번역했다.

각각을 소개하면 ‘성용부’는 여인의 용모, 화장법, 옷 입기 등에 관해 기술한 것이다.

세수하기, 눈썹 그리기, 자신을 돋보일 수 있는 신발 고르기, 몸매가 날씬하게 보이는 조끼와 벨트 이용하기 등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신선한 점이 있다.

검은 색 재킷은 안에 여러 가지를 바꿔 입을 수 있으므로 활용도가 높다거나, 신발을 선택할 때는 양말과 신발 그리고 발이 닿는 땅의 색깔까지 고려해서 각각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실부’는 거실, 벽, 창문, 천정, 화장실, 수납공간, 액자 걸기 등 주거 공간의 활용에 대해 서술했다.

‘기완부’는 집에서 사용하는 각종 기물에 대해 서술했다.

당시 수많은 문인 애호가의 골동품 수집 열풍이 있었고, 서화와 수석에 이르기까지 전문 서적이 많았는데, 이어의 경우는 실용적 측면을 고려하여 평범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기물 활용을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침대, 의자, 책상, 서랍 등의 활용법을 소개했다.

등불, 접시, 편지지 등의 작은 소품도 빼놓지 않고 다뤘다.

‘음찬부’는 음식, 즉 먹거리를 다룬 부분으로 재료와 조리법을 소개했다.

이어는 육식보다 채식을 권장했으며 버섯, 죽순, 각종 나물의 이로운 점 등을 소개하고, 매일 먹는 밥, 죽, 떡, 국수 등을 종류별로 자세히 다뤘다.

이어서 육류에서 어류로 넘어가며 각각의 특징을 차례로 다루었다.

‘종식부’는 식물의 품종과 재배에 관한 것이다.

주로 꽃을 다루고 있지만 목본(나무), 등본(덩굴식물), 초본(풀)으로 구분하고 토양, 바람, 햇빛 등 재배 조건까지 세밀하게 논하고 있어 16~17세기 식물학 발전의 한 수준을 보여준다.

또한 갖가지 꽃에 얽힌 자신의 일화, 여러 가지 별칭, 꽃과 관련된 자신의 특별한 애호 등에 대해서도 흥미진진하게 늘어놓아 읽을거리로서의 가치도 풍부하다.

‘이양부’는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는 인생은 한번뿐이니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철학관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다만 이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몸을 망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절제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제철에 맞는 음식 먹기, 올바른 수면법과 휴식법은 절제하며 즐기는 삶의 기본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나아가 올바른 성생활 등 은밀한 부분까지 하나의 실용적 지식 차원에서 제공하고 있어 놀라움을 준다.

이 대목에 이르면 과연 이어가 입만 열면 주장해온 “나는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정우기』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 수많은 일상의 사물이 즐비한 이 지식백과사전은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까? 물론 저자 이어는 음식, 건축, 기물 등 범주를 정해 서술하고 있지만 그 안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 사고방식을 파악한다면 이 책의 전체적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를 통해 일견 모순된 지점들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역자는 번역 과정에서 『한정우기』를 다음 세 가지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이 책은 물질문화가 범람하는 시대에 출현한 ‘사물’에 관한 기록이다.

둘째, 『한정우기』는 생활미학의 서적이며 곳곳에서 살아 있는 것, 삶 자체를 중시하고 있다.

셋째, 저자가 집필하면서 당시 유사한 서적들과 스스로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를 고민했고, 책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실용서라는 점이다.

1) 『한정우기』는 사물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수많은 사물 자체를 다룬다.

17세기 중반에 오면 중국 강남의 물질문화는 만개한다.

이에 따라 사물에 대한 애호가 폭증했으며 『한정우기』는 그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기록이다.

예를 들면, 다구는 자사호紫沙壺가 가장 좋고 그 가운데서도 의흥宜興에서 만든 게 가장 훌륭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등본식물의 지지대로 죽병竹屛을 활용하는데, 찻집과 술집마다 이것을 요란하게 설치하여 주택가에 이용하면 오히려 번잡스럽게 느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발전된 사물을 새롭게 변형하는 것이다.

그는 문장을 베껴서는 안 되듯이, 일상생활에서도 유행하는 것을 그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변형을 시도해보라고 권했다.

이어가 가장 득의했던 부분은 창문의 난간을 부채꼴로 만들어 안팎의 풍경이 마치 부채 속 그림처럼 보이도록 고안한 것이다.

특히 이것을 이동하는 배의 선박에 이용할 경우 창밖의 풍경은 이동하는 그림이 된다.

그는 물질의 시대를 정확히 바라보며 이를 도피하거나 거절하는 대신 더 많은 사람이 향유하는 쪽으로 사고했다.

많은 문인이 대중들과 선을 그으며 경쟁적으로 고급화를 지향했다면, 이어는 통속소설과 희곡의 창작자답게 생활미학 서적에서도 모든 계층이 공유할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의 방안을 강구했다.

서술 과정에서 그는 부자와 빈자가 모두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신부의 비녀와 귀걸이를 고를 때 가난한 사람을 위해 별도의 조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즉 금비녀와 옥비녀를 마련할 수 없을 경우, 소뿔은 사용할 수 있지만 구리나 주석을 사용하면 머릿결이 상하므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이 책을 쓰는 취지는 별난 취향을 공유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가난한 집이어서 옹기조각으로 벽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그 한도 내에서 조각들을 크고 작게 다듬고 무늬를 만들어 삭막함을 없앰과 동시에 운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2) 『한정우기』는 삶 자체를 중시한다 이어는 책에서 무엇보다 삶을 긍정했으며, 삶의 모든 영역이 즐겁고 쾌적하기를 희망했다.

한없이 ‘사물’에 집착한 시대 심리의 저변에서 우리는 생生의 발견이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또 하나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구체적으로 욕망의 인정, 쾌적함의 추구, 양생법 소개로 드러난다.

『한정우기』에서 희곡부분을 제외하면 맨 앞에 놓인 것이 성용부이며, 이는 여인의 목소리와 외모 가꾸기에 관한 전문적인 글이다.

식욕과 성욕은 본성이라 말했던 맹자를 끌어와 다소 익살스럽게, 집에 사나운 부인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첩을 사서 즐거움을 취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했다.

남녀간의 욕망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올바른 수면과 바른 먹거리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보였다.

그는 이양부?養部를 열면서 인생백세에 즐거운 날이 얼마나 되느냐는 탄식으로 시작했지만, 곧바로 우울한 감정을 떨치고 더더욱 하루하루를 쾌적하게 즐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사계절 행락법 등을 구분하여 서술한 뒤,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숙면의 비법을 소개했다.

욕망의 발견과 맞물린 또 하나는 사람의 개성이다.

이어는 『한정우기』의 여러 부분에서 남들과 구별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한평생 두 가지 재주가 음악과 정원 건축인데 가난한 삶에서 이를 다 구현하지 못해 애석하다고 술회했다.

또한 이어의 독특한 개성은 사물에 대한 집착 속에서 더욱 잘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 꽃과 대나무를 이상할 정도로 좋아했다.

꽃 가운데는 수선화를 가장 사랑하여 ‘나의 목숨’이라 불렀고, 음식 중에는 게를 가장 좋아하여 가을철 게를 사먹기 위해 따로 모아둔 돈을 일러 ‘매명전買命錢’이라며 유난히 장황하게 기술했다.

이밖에 그의 기록에 따르면, 꽃구경과 새소리 듣기를 좋아해 밤에는 꽃보다 늦게 잠들고 아침에는 새보다 빨리 일어나 그 소리와 모습 하나라도 놓칠까 두려워했다고 고백했다.

한번 뿐인 삶에서 쾌적함의 추구는 주로 청결에 대한 요구와 식생활에 많이 드러났다.

이에 거실부에서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담장, 대청, 창문틀의 양식을 세세히 지적하는 것은 물론, 물 뿌리기와 쓸기 항목을 따로 마련하여 청소의 도道를 자세히 소개했다.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그는 주로 음찬부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식재료를 소개하고, 세척법과 손질법을 다루었으며, 이양부에서는 음식의 때에 맞는 적절한 섭취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3) 『한정우기』는 활용을 다룬 실용서다 이어는 책에서 수많은 기물, 음식, 도구 등의 활용법에 대해 고민했다.

우선 그는 더 많은 실용 지식을 전달하고자 애썼다.

예를 들면, 여성의 화장법에서는 피부 청결의 비법으로 수시로 손을 깨끗이 닦고 머릿기름이 얼굴에 번지지 않도록 수건을 분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건축은 화려한 것이 능사가 아니라 아름다움 속에 편리함이 있어야 하므로, 남향으로 집을 앉히고 적절한 담을 설치했다.

동선動線의 편리를 위해 쪽문을 따로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꽃과 관련된 지식에서는 토양과 물의 조건 뿐 아니라, 말리꽃 가꾸는 법, 매화 감상을 위한 도구, 난초 향 맡는 법 등을 각 화초의 특성에 맞게 세심하게 정리했다.

대중을 위한 책인 만큼 모두가 공유하는 일상생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서랍이나 상자, 의자 등 문인 생활에 가까운 기물들의 사용법을 전수함은 물론, 효과적인 목욕법과 여름철 휴양 방법 등에 대해서도 지면을 마련했다.

활용에 대한 이어의 철학은 ‘활변活變’이라는 단어가 대변한다.

그는 이 단어를 중시했는데, 그 바탕에는 지식과 문화 발전에 대한 이어의 긍정적 가치관이 깔려 있다.

그는 그의 시대가 전체적으로 옛것을 미워하고 새것을 좋아하며, 보통의 것을 지겨워하고 기이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추세에 있다보면 자신의 모습조차도 진저리치게 느껴져 타고난 외모조차 바꾸고 싶어질 터인데, 과연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이 확산된 21세기의 한국에 오면 이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맹목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가 따르므로, 모든 상황에 맞게 적절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간단하게 의자 밑에 석탄이나 차가운 물을 설치하는 방법으로 겨울용 의자와 여름용 의자를 고안했고, 침대의 휘장에는 겉 씌우개를 마련하여 자주 세탁할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겨울철 도자기에 꽃을 꽂을 때는 안에 받침대를 설치하여 꽃들의 모양을 잡아주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얼어서 터지는 것을 방지하고 꽃의 모양도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작은 변화 가운데 이어가 가장 득의한 부분은 날씨에 따라 변형이 가능하게 고안한 처마다.

이것을 ‘활첨活?’이라 불렀는데, 처마 아래 별도의 차양을 설치해 양 끝에 회전축을 설치하여 맑은 날에는 아래를 향하게 해 볕을 확보하고 비 오는 날에는 위로 향하게 하여 낙수를 받는다.

이 대목에 이르러 이어는 기분 좋은 어조로 “이렇게 하면 내가 하늘을 이용할 수 있으니 하늘이 나를 곤궁에 빠뜨릴 수 없을 것”이라 했다.

활용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의 부분은 ‘절제’다.

청나라가 들어서기 전, 물질문화의 선두에 선 책들에서는 절제를 말하기 어려웠다.

물질문화는 끝이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확산되었으며, 온갖 계층의 사람이 그 화려함과 속도에 매료되었다.

정치에 실망한 강남을 중심으로 문인들은 여행을 즐기고 원림에서 희곡을 감상하면서 자신들의 극단적 도취상태를 ‘벽癖’이라 칭하고 예술가라 자부했다.

이어는 한편으로 이러한 미감을 공유하면서도 절제를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는 풍요로운 사물을 더 많은 계층이 향유할 수 있다는 대중화 지향에 기반한 것이고, 둘째는 전란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가졌던 생명에 대한 연민과 관련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결합되어 그는 세상에 재화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불필요한 낭비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여인의 치마폭에 주름을 많이 넣으면 풍성하고 예쁘지만, 과도한 주름은 미관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비싼 옷감을 낭비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또한 서술에 있어 비용 절감의 효과를 늘 강조했으며, 때로는 벽의 중간에 등불을 설치하여 두 개 공간에서 나눠 쓸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절제의 철학은 그의 미학적 입장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어는 값비싼 골동품과 서화는 문외한일뿐더러 사치와 낭비에 반대하는 그의 주장에 맞지 않는 것이어서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속공상雅俗共賞’을 표방한 『한정우기』는 그가 가장 득의한 건축에 있어서조차 그 첫 단락에서 “집은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부유한 사람의 집이라도 쾌적할 정도의 넓이면 족하며 불필요하게 크기만 한 건축에는 반대했다.

아울러 그는 식생활에 있어서도 탐욕을 경계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채식을 위주로 할 것을 권유했다.

이 부분 특히 오늘날에도 공감할 만하다.

그는 인류가 이미 너무 많은 종류를 섭취하여 더욱 더 질병에 잘 걸리게 되었으니, 전보다 덜 먹고 양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음식에는 많이 먹어도 되는 음식, 삼가야 하는 음식 등이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고기나 조류보다 소, 돼지, 양이 더 가련한데 그 이유는 잡아먹기 위해 덫을 놓았기 때문이라 했다.

또한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살아 있는 채로 거위 발에 뜨거운 기름을 부었다가 연못에 풀어주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요리비법을 듣고 그 참혹함에 가슴 아파했다.

또 초목은 감각이 없다는 사람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백일홍 나무는 가려움을 두려워해 사람이 줄기를 문지르면 몸을 떠는데 이로 미루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초목들도 모두 지각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식물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성에 대한 관점은 시대적 한계… 이어는 연극단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배우 중 상당수는 첩이기도 했으므로, 요즈음의 도덕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문란한 생활을 영위했다.

사치와 욕망의 시대에 활동하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기인奇人으로 비춰졌던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특히 여성의 미모에 관한 부분은 여성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감상자이자 소유자를 위한 것이어서 여성 독자들은 이런 대목에서 씁쓸해질지도 모르겠다.

역자는 『한정우기』를 번역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는데, “때로는 여성 번역자로서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고 선택하고 관리하고 감상하는 일련의 체계적 서술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초목조차 통증을 느낀다며 함부로 식물을 훼손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잔혹한 방법으로 행해진 여성의 ‘전족’에 대해서는 당연시했으며, 오히려 한걸음 더 나아가 악기를 연주하는 아름다운 손가락, 표정 있는 눈동자, 흰 피부 등 하나하나를 분류하여 기술했다.그러나 이어의 강점은 자신의 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속임 없이 다 드러냈다는 데 있다.여성의 미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態’라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 ‘매력’이나 ‘분위기’에 해당되는 것이다.정확히 말해 미인은 아니지만 사람을 끄는 경우가 있는데 그 비밀은 바로 ‘태態’에 있다.이러한 매력은 자로 잰 듯 규격화된 아름다움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어의 가감 없는 서술에 당황하다가 허를 찔린 기분이다.” 그럼에도 글을 읽다보면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역자가 책을 옮기면서 가장 매료되었던 부분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어 자신이 몹시 득의했던 부채꼴 모양의 창문으로, 배에 설치하면 안팎으로 서로의 모습이 풍경이 된다.

일찍이 송대의 문호 소식蘇軾은 「적벽부赤壁賦」에서 하늘의 달과 흘러가는 물은 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이니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 그 순간 그림으로 탄생한다고 했다.

소식의 이 명구가 고전적 물아일체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이어는 이 그림을 양방향으로 설명한다.

그들이 나에게 그림이 되듯, 나도 그들에게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고정된 시점에서 한곳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하좌우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발상은 사상이 자유로웠던 명나라 풍토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온갖 꽃의 아름다움을 서술한 끝에 나오는 ‘채소 꽃’예찬론이다.

채소 꽃은 하나하나는 초라하지만 그것이 지천으로 피어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은 그 어떤 명품 꽃에 비길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서술하며 그는 숫자가 많아지면 비천하고 비루한 것이 귀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다.

어쩌면 상인 가문 출신이었고 명明과 청淸의 왕조 교체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렴풋하게나마 ‘민중’혹은 ‘시민’의 힘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밖에도 이어는 통속소설과 희극의 작가답게 읽는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재주를 지녔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었으면 잘 읽히지 않을 것을, 실용지식과 경험담을 섞어서 얘기하는 가운데 수시로 과장된 언어를 구사한다.

자신이 고안한 침상용 휘장을 설치하고 그 안에 생화를 꽂아두었더니 마치 선경에 든 듯 숙면하고 깨어서도 황홀했다고 고백했다.

당시 이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가벼워 날아갈 듯 인간 세상에 있지 않은 것 같아 처자식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런 복을 받게 되었는가? 설마 평생의 복을 다 누린 것은 아닌가?”이 대목을 읽으면 이어의 허풍이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난을 많이 겪었기에 조금의 호사스러움에도 두려울 만큼 감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어는 글을 이어나가며 수시로 득의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조급하고 때로는 허탈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감독, 이어 주연의 실생활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은 분명 『한정우기閑情偶寄』인데 전통적으로 ‘한정閑情’이란 공적인 일에서 벗어났을 때 느끼는 한가로운 감정이며, 그에 더해 말할 수 없이 미묘한 슬픔과 여운까지 묻어나는 단어다.

이어가 자신의 책에서 ‘한정’을 표방한 것은 이 글이 업무에 관한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의 취미나 편안한 휴식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또 ‘우기偶寄’라는 것은 어쩌다 기록하다는 것으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서술이 아닌, 즉흥적 감정의 자유로운 기록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제목과는 반대로 이어의 ‘우기偶寄’는 겸사일 뿐이며, 그는 아마도 이 책을 필생의 업적으로 남기려는 야심이 있었던 것 같다.

글의 도처에서 묻어나는 득의와 과장, 더 잘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의 한가한 그 어느 때를 대비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각종 취미생활을 세세하게 기록했는데, 이런 그의 필치를 따라가다보면 과연 이어 본인은 어느 때 한가하고 자적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신의 필법을 따르자면, 어쩌면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여 세상 모든 이의 ‘한가함’을 위해 끝없이 분주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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