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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역사/문화 경기, 천년의 문화사 1
  • 저자 경기문화재단
  • ISBN 9788999901102
  • 페이지 352
  • 정가 15,000원
  • 판매가 15,000원 (10%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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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지난 2014년, 조선시대 경기제京畿制 시행 6백년을 맞아 경기도 6백년의 역사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규명하는 과정과 결과가 여기저기서 이뤄졌다.

사실, 필자가 몸담은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이를 위한 작업이 훨씬 그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 하나의 압축된 특징으로 규정하기 위한 고민과 토론이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진작부터 ‘경기 6백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를 준비하고 그 중심적인 내용을 정리하면서도, 정작 이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자료들을 전체적으로 훑으면서 6백년 경기도의 역사문화적인 정체성을 ‘조선 근본의 땅(朝鮮根本之地), 경기京畿’라고 정리했다.

경기는 조선의 왕화王化(왕의 어진 정책)가 우선 실행되었던 곳이어서 왕조의 토대를 이루고 있었음에서였다.

2015년이 시작됐다.

6백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개념의 설정과 확장된 아이덴티티를 조직하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했다.

이제는 ‘2018, 경기 천년’이었다.

이것이 단순히 역사의 소급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지극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 작업은 필요치 않다고 감히 단언한다.

여기에는 그간 역사문화의 회고와 정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재발견과 더 나아가 미래의 지향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의 ‘새천년(New millennium) 2018’은 이렇게 시작되어야 한다.

지리적으로 경기도가 우리 역사에서 주요 무대로 등장한 것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溫祚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면서부터였다.

현재의 풍납토성 일대가 그 한성漢城으로 비정되는데, 『삼국사기』에는 기원전 18년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부터 2,030여 년 전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삼한三韓 중에서 78개의 소국小國으로 이뤄져 있던 마한의 몇몇 나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서기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충청남도 공주)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5백여 년에 조금 못 미친 긴 기간 동안 경기도는 백제의 도읍을 끼고 있었다.

현재의 광역자치단체,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과 비교할 수 없지만, 경기 지역은 한성백제의 도읍을 아우른 중심 영역이었다.

경기도 일대가 역사의 중앙무대로 다시 등장한 때는 5세기(440여 년)가 지난 9세기 말 10세기 초였다.

죽주竹州(안성) 등에서 세력을 모은 궁예弓裔가 901년 국호를 고려로 하고 송악松嶽(개성)에 도읍했다.

그리고 918년 왕건王建이 마진·태봉 등으로 국호를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했던 궁예를 축출하고 다시 송악에서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하며 고려를 건국했다.

2018년은 그런 고려의 건국 천백년이 되는 해이다.

또 18년이 지난 936년 고려는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했고, 발해의 태자로 대표되는 발해 유민을 수용하여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이루었다.

이후 경기 지역은 천년을 넘게 한반도 역사의 중심이 되었다.

현재의 ‘경기문화京畿文化’라고 불릴 수 있는 정체성의 원류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유교가 바탕이 됐던 조선의 문화적인 특징을 사대부, 선비를 중심으로 하는 단아와 세련, 정제미 등으로 규정할 수 있는 반면에 고려 문화의 특징으로는 다양성, 개방성, 포용성 등이 거론되고 있다.

상대적인 관점이 전제돼 있지만, 고려사회는 조선과 무언가 다른 분명히 역동적인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문화적인 특성들은 황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불교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유교·도교·풍수지리·민간신앙 등 다양한 사상들과 충돌하지 않고 교섭했다.

또 개경의 관문인 벽란도에서는 동아시아를 넘어 아라비아 상인들까지도 자유롭게 교역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코리아’가 유래했다.

개방성에 토대한 다양성이 공존했던 고려사회의 모습이다.

고려사회에서 개방성과 다양성은 포용성이라는 단계로 확장되면서 역동적인 모습으로 결과지어졌다.

고려의 통일 과정에서 왕건의 아버지인 용건龍建(후에 세조로 추증)은 송악에 도읍하려는 이유를 ‘조선·숙신·변한의 통합’이라는 데서 찾았다.

한반도는 물론 옛 고조선·고구려의 영역 회복과 그곳을 구성하고 있던 다종족(민족)·다문화 사회의 통섭을 지향했다.

그들이 얻고자했던 일통삼한一統三韓은 개방성과 다양성을 포용성으로 아우르고, 이를 역동적인 공존을 통해 융합한 새로운 창조의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통해 고려사회의 이런 포용성과 역동성을 배우려 한다.

그리고 이를 새천년 경기, ‘2018, 경기천년’의 준비를 위해 적극 참고하려 한다.

황제국 고려의 황기皇畿 대부분이 지금의 경기京畿였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더욱 확장되고 있는 다양한 갈래의 문화적 홍수 속에서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고려의 이런 가치들을 배움으로써 역동적인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야 한다.

단순한 구호에 머무르지 않는 통일의 지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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